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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죽은 듯이 잠든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신 아드님이
나를 깨워주시고

금빛 날개로
함박웃음으로 내 앞에 펼쳐진
완전 공백의 두루마리 한 필
이를 이름하여 ‘오늘’이라 하셨다

오늘이 억만번 와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시작이요 끝인 이 시간의 적축 속에
강물 같은 전설이 흐른다

오늘!
그것은 아무도 밟지 않은 망망한 백사장
희다 푸른 눈길을 홀로 가는 마음

그것은 어쩌면 애기 앞에 펼쳐진
티 없는 종이 한 장
그러면 너는 한 개 물감일레라

여기 너는
시커먼 광란의 파도를 그릴 것인가
아니면
간간이 떨어지는 눈물방울로
길섶의 푸성귀를 적실 것인가
아니면
다가올 빗바람에 떨며
전율의 고동 소리로 채울 것인가

실로 오늘만은 애기같이
동그라미 하나 아침해라 그려놓고
그 아래 다문다문 장미 포기나 심고
공작 같은 후광도 그리고
그런 웃음보 같은 화원이나 꾸며 보려므나

먼훗날 지나는 사람 있어
너의 체취 묻은 꽃잎이
마치 제 발자욱 같다고
후련히 돌아서 마음 겨운
그런 다른 이의 오늘도 있으려니

보라! 그 날 허허 궁창에
등불 하나 달으시고
밝은 쪽을 너에게 돌려
이것은 너의 것 ‘오늘’이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