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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빈가 했는데, 봄을 부르는 봄비였나 보다. 죽은 듯이 서 있던 겨울나무에도 물이 오르고 가지 끝마다 봉긋봉긋 꽃망울이 맺혔다. 봄비에 씻긴 하얀 알몬드꽃도 벗꽃처럼 화사하다. 야생화인들 빠질 손가, 앞 다투어 피어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밝은  명도로 우리 눈길을 잡는 것은 역시  민들레다. 잔디가 파랗게 살아나는가 싶더니, 어느 새 여기저기 노란 민들레가   피어나 아름다운 보색대비를 이룬다. 소멸과 생성. 겨울과 봄의 대비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인 듯싶다. 죽은 듯, 끝인 듯 소멸하여도 결국은 봄을 기다려 이렇게 되돌아오는 생명들.

      어느 해 봄이던가. 시간을 내어 어머니가 사시는 노인 아파트에 들렸다. 연락을 드리고 가지 않아서인지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방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언제 오실 지 모르지만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둘째 딸이 와 있으면 어머니 눈은 두 배로 커지겠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 채마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머니의 채마밭에는 벌써 각종 채소들이 싹을 내밀고 있었다. 오이, 상추, 쑥갓, 고추, 호박, 그 옆에 토마토까지 가지가지 심어 놓으셨다. 그 사이로 하얀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다니며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흰나비 환상에 젖어 살고 있던 나는 이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 카메라에 열심히 봄의 정경을 담았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노란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가 함께 앵글에 잡혔다. 사방 천지가 초록과 노랑이 펼치는 봄의 향연인데, 그 속에 끼어 있는 하얀 민들레. 아이들 놀이에 선뜻 끼이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노인네의 모습이랄까. 왠지 처연한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놓고 오랫동안 하얀 민들레를 응시했다.

    노랑이 빠져나간 하얀 민들레는 마치 젊음이 빠져나간 어머니를 연상케 했다. 노란 민들레처럼, 한 때는 우리 어머니도 저토록 밝고 환한 날들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색채가 빠져나간 하얀 민들레가 된 우리 어머니. 어떤 삭풍에도 흔들림 없이 우리를 키워낸 굳센 어머니가 지금은 살랑이는 미풍에도 날아가 버릴 듯 연약해졌으니. 새삼,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연민의 마음에 뜨거운 수분이 두 뺨을 적셨다.

    나는 일어나 노란 민들레 한 송이와 하얀 민들레 한 송이를 꺾었다. 사무실에 가서 스카치 테잎을 빌려 노트에 붙이고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불현듯 어머니가 보고 싶어 왔더니,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방문만 굳게 잠겨져 있더군요.

   그래서 어머니도 기다릴 겸 채마밭으로 내려갔어요.

   싹도 예쁘게 자랐고, 그 사이로 흰 나비도 나풀나풀 날아 봄의 정경이 너무도 아름다웠어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드라마 ‘봄의 왈츠’ 풍경을 닮았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 아름다운 봄의 정경을 새겨두고 싶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문득, 노란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가 같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노란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

   그 순간, 어머님이 떠올랐어요.

   노란 민들레처럼 밝고 환하게 빛나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과 색채가 다 빠져나간 지금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그냥 눈물이 나더군요.

   하지만, 어머니!

    비록 하얀 민들레라도 어머니가 제 곁에 살아 계셔서 저는 행복해요.

    어머니, 부디 건강 관리 잘 하셔서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주세요.

    -사랑하는 둘째 딸 희선이 올림.-

 

     여든 살 어머니의 짧은 날들을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났다. 펜으로 쓴 편지건만, 눈물로 쓴 편지처럼 여기저기 잉크 자국이 번져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방문은 닫혀 열릴 줄 몰랐다. 할 수 없이, 어머니 방문 앞에 편지를 붙여놓고  왔다. 돌아오신 어머니가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많이 우셨다고 했다.

   눈을 크게 뜨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엉뚱하게도 어머니를 울려놓고 말았다. 모두 다 하얀 민들레 탓이다.  진초록과 노랑의 화려한 보색대비에 왜 하얀 민들레가 끼어들어 슬픔을 자아냈는지. 화사한 봄의 정경과는 영 맞지도 않는 풍경이었잖아. 짐짓 변명을 해 본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네 삶 자체가 색깔이 다른 기쁨과 슬픔의 보색대비로 이루어진 것이거늘. 봄은  우리에게 그 화두 하나 던져주려고 일찌감치 진초록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를 피우고 채 지기도 전에 하얀 민들레를 곁에 두게 하나보다.  

     봄은 정녕 공평한 것. 들에도 산에도 어김없이 찾아들고 화려한 장미꽃이나 들꽃에도 똑 같은 꽃망울을 맺게 하나니.  주인 잃은 어머니의 채마밭에도 봄은 왔으리라. 그리고 어머니가 밟고 다니셨던 그 잔디밭 위에도 노란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가 번갈아가며 민들레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겠지. 

   소멸과 생성. 그리고 또 다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봄은 짧고 빠르게 떠나간다.  그러나 봄은  짧아서  아쉽고,  삶은  유한해서  귀중 하다. 다음 봄을 기약함인가.  봄비에 씻긴 하얀 알몬드꽃이 벗꽃처럼 흩날린다. 진초록 잔디밭은 하얀 꽃잎으로 덮힌다. 그 곁에, 키를 낮추어 낮게 피어있던 하얀 민들레도 바람결에 높이 날아오른다. 생애 첫 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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