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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처럼 한 장 두 장 떨어져 나가더니 드디어 마지막 잎새인 양 한 장의 달력만 남았다. 마음도 스산하고 날씨도 스산해진 연말이다.

   이러한 때, 순간의 즐거움에 지나지 않지만, 크리스마스라도 끼어있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카드 하나 사고 작은 선물들을 마련하는 기회라도 있으니. 예전처럼 카드도 선물도 많이 오가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동심으로 돌아가 들뜬 마음이 된다.

   올해는 어떤 사람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잠시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인사치레가 아닌 필요한 선물. 거기에 내 마음까지 얹혀준다면 좋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문득 마음 한 자리에 잡고 있는 딸아이의 선물이 떠오른다. 미완의 선물이었기에 더 애틋한 마음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딸아이가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딸은 12월 초부터 계속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나는 학교 프로젝트인가보다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책을 들었고 딸아이는 제 ‘프로젝트’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에는 제법 큰 프로젝트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슬쩍 보니 베개같은 걸 만들고 있었다. 속에다 이것저것 헝겊을 찾아 속을 채운 뒤 겉감은 돌아가면서 홈질로 마감하는 중이었다. 딸애는 늘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나면 나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묻기 때문에 어련히 알아서 하랴 싶어 모른 척했다. 다만, 바느질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아이가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좀 신기했다.

   며칠 뒤, 딸아이는 각기 다른 색깔의 헝겊쪼가리를 오려 몇 개의 알파벳을 만들었다. 스펠링은 I, L, O, V, E, M, O, M으로 총 여덟 자였다. 그다음, 이리저리 궁리하는 듯하더니, 지그재그로 배치한 뒤 스카치 테잎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한 자 한 자 다시 홈질을 하며 몸통 위에 붙여나갔다. 아프리케수로 해야 될 것을 홈질로 마감하고 있으니 끝이 매끄럽지 못했다. 이때쯤은 내 도움이 필요할 때다. 나는 아프리케 수 놓는 법을 가르쳐주며 폭과 높이를 잘 맞추어야 깔끔하고 예쁘다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무슨 프로젝트냐고.

   딸아이는 학교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번 크리스마스 때 엄마에게 줄 선물이라고 했다. 내게 줄 선물? 보통 때도 손으로 만든 선물을 주긴 했지만 소소한 소품들이었다. 그런데 열흘이 넘도록 만들고 있는 이 선물의 정체는 뭔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엄마! 엄마는 맨날 책을 읽잖아. 그런데 엄마 엘보우가 아플 것 같아서 지금 엘보우 필로우 만들고 있는 중이야." 나의 궁금증을 눈치를 채고 딸아이가 설명해 주었다. "와우! 엘보우 필로우를 만든다구? 땡큐!" 나도 모르게 딸아이를 덥석 안아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 내심 놀랐다. 선물 하나에 그렇게 깊은 마음을 담다니. 골똘히 생각해서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모았을 딸아이. 그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미세한 떨림이 왔다.

   자세히 보니, 엘보우 필로우는 제법 모양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만든 까닭에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단 석 자 M, O, M만 남았다. 그래도 글자를 한 뜸 한 뜸 떠서 아프리케수로 마감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 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만들던 엘보우 필로우를 찾았다. 늘 있던 자리에 없다며 울상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찾아보아도 없자, 아이는 삼촌한테 혹시 못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대청소를 하면서 자질구레한 건 다 버렸다는 거였다. 그것도 밖에 있는 큰 쓰레기통에 아이는 울면서 뛰쳐나갔다. 그러나 쓰레기통은 이미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열흘 넘도록 공들여 만든 선물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아이는 방으로 뛰어 들어와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흐느껴 울었다.

   "이제 엄마한테 줄 게 없잖아! 아무 것도 줄 게 없잖아!" 흐느낌과 함께 뱉는 딸아이의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받은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괜찮아. 카드 예쁘게 만들어서 주면 되잖아?" 나는 딸아이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딸아이는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섧게 울었다. 어깨까지 들먹이며 섧게 우는 아이를 보니 나도 눈물이 솟구쳤다. 결국, 딸은 손수 만든 카드 속에 10불짜리 지폐 한 장을 넣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밀었다. 예전에는 없던 10불짜리 지폐에서 나는 더 큰 선물을 주지 못한 딸의 미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젠 서른 살이 넘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아이. 나는 아직도 그때의 고운 마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눈물과 함께 맞바꾼 미완의 선물.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중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이다.

    온전히 마음을 담아서 주고 싶은 선물.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선물. 잃고 나면 못 견디게 서러울 선물. 그런 마음의 선물을 나는 누구에게 몇 번이나 주고 떠날 수 있을는지. 한 장 남은 달력에 눈길을 주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초고12-01-12, 수정10-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