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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나비보다 먼저 받아 드는 봄 편지다. 더 빨리 피어난 봄꽃이 있을 법도 하련만,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밝은 색채 때문이리라. 겨울 찬바람에 목을 움츠렸다가도 노란 민들레를 보면, '어! 벌써 봄이네'하고 사방을 돌아보게 된다.

  

먼 산 잔설이 긴 겨울을 말할 때, 민들레는 봄이 왔다고 온 몸으로 일러준다. 모진 겨울바람을 이기고 나온 꽃치고는 어쩌면 그리도 작고 앙증스러운지. 꽃잎은 손만 대도 금새 흩어져 버릴 정도로 약해 나비 날개를 만지듯 조심스러워진다.

  

봄이 무르익어 가면, 나뭇가지마다 새 순이 돋아 연초록빛 라임 컬러를 자아낸다. 그러나 민들레만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진초록 잔디와 어우러져 화려한 봄의 정원을 장식한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제 영토를 넓혀가는 민들레를 보면 재산 늘여가는 자식을 보듯 대견스럽다. 어떤 사람은 잘 가꾼 잔디에 잘못 들어온 잡초처럼 민들레가 생기는 족족 뽑아버린다. 하지만, 나는 민들레가 더 많이 퍼져 아예 잔디를 봄의 색채로 채색해주었으면 한다.

  

굳이 뽑아버리지 않아도 민들레는 우리 곁에 그리 오래 머물진 않을 터. 가끔은 뽑히고 더러는 밟히면서 모진 삶을 살다가 짧은 봄을 따라 훨훨 날아가 버린다. 샛노란 민들레는 언제 연노란 민들레가 되어볼 겨를도 없이 하얀 민들레가 되어 홀연히 떠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은 일장춘몽. 이 세상 소풍 왔다 돌아가는 시인처럼 깃털 가벼이 떠나는 민들레를 보면 참 신기하다. 어쩌면 그리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지.

   

가끔, 민들레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짧은 삶이면 어떠랴. 살 때는 가장 밝은 명도로 치열하게, 떠날 때는 무채색으로 홀연히. 그런 삶을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봄비가 내리자, 잔디밭은 더욱 화려해진다. 영롱한 이슬은 저마다 무지개 세상을 만들며 방울방울 맺힌다. 푸른 잔디는 진초록으로 빛을 더하고 노란 민들레는 비에 씻겨 더욱 샛노랗다.

 

초록과 노랑이 한 공간에서 시샘 없이 피는 걸 보니, '그레이 존‘을 강조하던 노 석학의 음성이 간절함으로 다가온다. 흑과 백이 한걸음씩 다가와  그레이 존을 넓혀가자던 그 분의 말씀. 그 회색 광장이야말로 평화의 비무장 지대가 아니겠는가.

  

미국까지 와서 좌파는 무엇이며 우파는 무엇인가. 자연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색깔론으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 잔디는 민들레를 품어주고 민들레는 잔디를 품어 아름다운 봄 풍경을 만들 뿐이다.

비와 태양이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때 비로소 무지개가 피듯이, 우리도 그런 선한 마음으로 쌍무지개를 만들 수는 없을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민들레를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든다.

여기저기 흩어져 혼자 피어있는 민들레. 그를 일러 시인은 나비가 딛고 가는 봄의 디딤돌이라 했던가. 시인의 마음도 아름답고 시인을 노래하게 한 민들레도 아름답다. 모두가 아름다운 봄의 왈츠다.

하지만, 나는 민들레에게 살짝 귀띔해 주련다. 홀로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함께 피는 군집의 꽃은 더욱 아름답다고. 봄 편지를 받았으니 나도 곧 답장을 띄워야 할까보다.